누가복음 16장 1-13절

하나님의 백성이 이 세상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가장 예민하고 중요한 문제가 재물의 문제일 것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재물의 문제를 하나님의 백성답게 다루지 못한다면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재물은 사람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재물을 다루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본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본문은 해석이 쉽지 않은 복잡한 본문입니다. 학자들도 다양한 해석을 하고 있고요. 그러나 버믐 우리가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들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선 우리가 이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 염두에 두어야 할 두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첫째는 이것은 예수님의 비유라는 것입니다. 비유는 당시 사람들에게는 쉽게 이해가 될 만한 이야기인데, 분명한 것은 이것이 실제로 일어난 것을 기술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르치시기 위해 만드신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물론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겠지만 분명 이 이야기에는 예수님의 의도가 담겨 있기 때문에 주님의 의도를 보는 것이 이 본문을 이해하는 핵심이 됩니다. 그런 면에서 두 번째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이 비유가 제자들을 가르치시기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비유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제물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며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를 가르치기 위한 의도로 말씀하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의도를 분명히 기억하면서 이 비유를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한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었습니다. 사실 본문의 내용을 보아서 이 부자가 소위 지주라고 부르는 자기의 땅을 소작농들에게 빌려주고 그 소출을 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오늘 본문의 초점은 부자보다는 청지기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눈을 주인보다는 청지기에 주목하여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 청지기는 이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그가 했던 중요한 일 중의 하나는 소작농들의 소출 가운데 주인에게로 돌려야 하는 것을 받아서 그 재산을 관리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다른 사람들에 의해 주인에게 고발을 당하게 되었는데요. 바로 그 청지기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어떻게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것인지에 대해 말씀하시지는 않습니다. 혹, 그것이 다른 사람들의 모함인지 아니면 그 청지기가 어떤 식으로든 주인의 소유를 빼돌리거나 했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지만, 중요한 사실은 이 주인은 이것에 대해 확신을 하고 있고, 결국 이 청지기에게 해고를 통보하면서 그가 그 동안 청지기로서 보던 일을 셈하고 정리하도록 명했습니다. 아직 완전히 쫓겨난 상황은 아니지만 그것은 시간문제 일 뿐 이제 그대로라면 결국 이 청지기는 주인에게서 쫓겨나게 된 상황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이 청지기의 속마음으로 우리를 들여다보게 하십니다. 이 청지기는 자신의 직분을 빼앗긴 상황에서 무엇을 할지를 고민합니다. 그가 그 동안 청지기로서 누리고 산 삶을 생각하면 땅을 파는 소작농이 되자니 힘이 없고, 그렇다고 걸인이 되어 빌어 먹자니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자신이 직분을 주인이 집에서 쫓겨난 후에도 사람들이 자신을 영접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됩니다.
그는 그가 섬기던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일일이 부릅니다. 그리고 그가 주인의 청지기로서 발휘할 수 있는 권한을 활용해서 그들이 주인에게 빚진 양을 줄여줍니다. 여기서 말하는 빚이란 주인에게 빌린 돈이라기보다는 소작농으로써 주인에게 내야 하는 세금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결정하는 권한을 이 청지기가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그가 청지기의 직분을 잃기 전에 그들에게 그 세금을 감면해 줌을 통해서 그들의 마음을 얻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청지기의 행동이 옳았는지 옳지 않았는지, 혹은 그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비유 가운데에 있는 예수님의 의도에 의하면 이 청지기는 이 행동으로 말미암아 주인에게 지혜롭게 행했다는 평가를 받고 칭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에 대해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말씀하시면서 이 비유를 마무리 하십니다.
이것은 세상 속에서 청지기가 지혜로운 방법으로 자신의 삶과 재물의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9절에서부터 12절까지의 말씀은 다소 내용이 어렵고 복잡하지만 결국 이 구절들이 말씀하려는 바를 우리는 11절과 12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11절은 제자들에게 하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여기서 말하는 불의한 재물은 세속적인 재물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쉽게 말하면 주님의 제자들이 세상 속에서 살잖아요? 그런데 그런 세상 속에서 충성되게 일하지 않으면서 주의 일을 충성을 다해 할 것이라고 믿고 맡길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말씀이긴 합니다. 혹시 이런 생각을 하실 수 있는 거죠. “그럼 결국 세상에서 재물을 쌓는 일을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구나. 지금 내가 여기 앉아 있을게 아니네, 나가서 일해야지~”
그러나, 그것은 13절의 말씀과 성경 전체가 그리스도인들의 재물관에 대해 말하는 것을 잘못 이해하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매우 우리의 이중적인 신앙생활 방식에서 나온 것이 되는 것이죠.
13절의 말씀으로 가볼까요? 예수님은 지금까지의 말씀을 정리하시면서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두 주인을 섬기면 분명 한 주인을 더 사랑하고 더 중히 여기게 되고, 다른 한 주인은 덜 사랑하고 덜 중히 여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런 원칙 속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결론적인 말씀을 선언하십니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이 말씀은 매우 익숙하시죠? 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을 마치 세상에서 재물을 위한 일은 소홀히 하더라도 주의 일은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가 본문의 말씀을 전체적으로 잘 이해한다면 이것은 결국 세상에서 재물을 위해 사는 삶도 주님을 위한 삶으로 여기고 충성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재물을 얻기 위해 일하는 모든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그리고 하나님께 충성된 만큼 그 일을 위해서도 충성하여야 하는 것이죠.
결코, 세상에서도 세상을 섬기는 마음으로 일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유일한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행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한 부자가 재물을 쌓아 놓으려고 창고를 짓자 주님께서 오늘 밤에 네 생명을 찾으리니 이것이 누구것이 되겠느냐고 하셨던 것을 기억하시나요? 그리고 예수님께서 구제하라고 하시면서 재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고 하늘창고에 쌓으라고 하셨죠?
결국 이 땅에서 내 직장, 사업장, 그리고 모든 나에게 주어진 삶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져야 합니다. 그곳에서 일하는 모든 일이 주께 하듯이 진실해야 하며, 동시에 그곳에서 벌어들이게 되는 재물을 내 욕심을 채우고 이 땅에 쌓아 놓으려는 자세로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아닌 재물을 섬기는 종이 될 뿐인 것이죠.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재물을, 그 재물을 위한 나의 직업을 대하여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재물을 버는 것, 그리고 얻은 재물을 사용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주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결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기에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