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신년기도회 3일차
염려를 이기고 사는 믿음과 기도의 사람들
마태복음 6:24-34

새해를 시작하면서 어떤 마음이 드세요? 기대와 소망이 많으신가요? 아니면 두려움과 염려가 많으신가요? 사실 기대와 소망, 그리고 두려움과 염려는 항상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기대와 소망을 가지지만 동시에 그것에 이루어지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과 염려도 동시에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새해를 시작하는 이 시점에서 두려움과 염려를 지고 가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죠. 그래서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염려는 어디서 오는지, 우리가 우리의 염려를 신앙적으로 어떻게 대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24절의 말씀은 “우리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이것은 종의 신분으로서 주인을 섬기는 원칙으로 주시는 말씀인데, 여기서 말하는 두 주인은 하나님과 재물을 뜻하는 것이죠. 종의 신분인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것은 두 주인에게 속하여 그 주인을 위해 일하며 살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주인이 하나님과 재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어차피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바로 재물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죠. 다시 말해 종으로서 주인을 섬길 수 없도록 하는 것이 바로 재물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 재물이라는 단어는 맘몬이라는 아람어를 헬라어로 번역한 것인데, 1차적으로는 돈이나 재산을 지칭하지만 깊은 의미를 생각하면 하나님보다 더 유익하게 여기고 신뢰하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금 더 확대해서 말하면 하나님보다 더 사랑해서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것을 방해하는 우상과 같은 것이죠.
이 말씀에서 강조하는 있는 중요한 사실은 결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다른 것에 마음과 생각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재물을 사랑함으로 인해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섬김을 잃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이 바로 염려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염려라는 단어는 복잡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그렇잖아요. 염려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그 의미를 설명하자니 쉽지 않습니다. 그냥 걱정, 근심과 같은 말인가요? 염려라고 번역한 헬라어 단어의 의미는 “찢어놓다, 분리하다, 흩어 나누다”입니다. 다시 정리해서 말하면 “사람의 마음을 찢어지게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이렇게 흩으러진 마음, 찢어진 마음을 가지면, 다시 말해서 염려로 가득찬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을 온전히 섬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염려에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께 드려야할 마음을 빼앗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25절부터의 말씀은 “염려하지 말라”는 명령을 주고 계십니다. 간단히 살펴보면 목숨을 위해 그리고 몸을 위해 무엇을 먹을지, 마실지, 입을지 염려하지 말라하십니다. 공중의 새도 먹고 살도록 기르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더 귀한 우리를 먹이시지 않겠느냐고 하십니다.
다시 염려하는 우리들에게 물으십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뭐, 요즘은 키크는 약도 있고, 성장판 자극하는 운동법도 있고 하지만, 염려한다고 키가 커지는 것은 아니죠. 결국 하나님이 기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염려는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의복을 염려하는 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들의 백합화가 수고도 안하고 길쌈도 안하지만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영광보다 아름다운 옷을 입히신다고 말씀합니다. 하물며 내일이면 아궁이에 땔감으로 던져지게 될 들의 풀들도 아름답게 입히시는 하나님께서 너희를 입히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합니다.
그리고는 주님은 30절에서 이런 모든 것을 생각해보라! 그런 하나님께서 너희 아버지이신데, 너희에게는 어떻게 하시겠느냐고 물으면서 염려하는 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작은 자들아!” 재물로 인해 염려로 가득찬 우리들에게 주님은 “믿음이 적은 자들아!”라고 말씀하십니다.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자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인 것이죠.
저는 여기에서 한 가지 언급을 해야 할 듯합니다. 25절에서 30절까지에 있는 말씀은 우리에게 일하지 말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안해도 먹이시고 입히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현장에서 열심히 살아가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 일해야 합니다. 단, 그 모든 일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채우시고 열매를 주실 것을 믿고 염려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재물에 대한 염려로 살아가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죠.
31절로 가봅니다. 예수님은 위의 30절까지의 말씀을 정리하시면서,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믿음 없는 사람들의 염려입니다. 그렇게 염려하는 그들에게는 모든 기도가 그 염려로부터 나옵니다. 32절의 말씀을 보세요.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말씀의 결론을 맺으면서 우리가 너무나 잘 알지만, 잘 실천하지 못하는 말씀으로 다가갑니다. 33절의 말씀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한 절의 말씀은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너무나도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우리 존재는 이미 하나님께서 자녀로 여기시는 복된 존재들이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염려가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삶의 문제가 하나님께 달려있고 하나님 나라에 속한 것임을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먼저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의를 구하라!”고 명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철저히 신뢰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가 이루어지기를 구하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모든 우리의 필요를 아는 하나님께서 더 넘치도록 더하여 주실 것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이 말씀이 좀 낯설고 어색하신가요?
이 말씀이 우리에게 우리 삶이 일들을 기도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포인트는 먼저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이루어지는 일을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더하신다는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의 삶의 일들을 위해 기도할지라도 염려로 근심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감사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과 7절의 말씀이 기도의 비밀을 가르쳐줍니다. 6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분명 너희 구할 것을 아뢰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염려함으로 아뢰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함으로 아뢰는 것입니다. 이미 감사하는 거죠. 우리가 구원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이렇게 기도할 수 있음에 감사함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감사가 나옵니다. 그것이 기도의 시작이며 핵심입니다. 7절의 말씀은 그 기도의 결과를 설명합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응답을 어떻게 이해하시나요? 기도 응답은 내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의 평강으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샬롬의 온전한 평강이 내 마음과 생각에 채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 아시기 때문이죠. 그 다 아시는 하나님의 평강이 나를 채우시는 것입니다.
올 한해는 염려로 살지 말고, 믿음과 기도로 살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의 염려로 살지 말고, 하나님께 대한 감사로 살자고요. 그런 감사의 기도라는 비밀을 가진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