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1:1-14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한 이후 사울왕이 세워지기까지를 사사시대라고 부릅니다. 룻기는 이 사사시대를 지날 때 있었던 한 가지 이야기를 단편소설처럼 기록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성경이 룻기라고 이름 붙여진 것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 성경의 주인공은 “룻”이라는 한 여인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읽은 본문은 이 룻기의 첫부분인데, 비록 우리가 이 전체의 내용을 알고 있을지라도 새로운 마음으로 이 본문을 대하는 가운데 룻이라는 한 여인을 만나는 시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이스라엘에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 삶에 고난이 닥친 것이죠. 중동지역에서 느끼는 흉년은 우리가 생각하는 흉년과는 전혀 다릅니다. 중동은 비가 오는 시기와 오지 않는 시기, 즉 우기와 건기가 확실하기 때문에 우기를 이용해서만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기에 비가 오지 않으면 농사를 전혀 지을 수가 없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이들이 만나는 흉년은 생존에 위협을 느낄만한 것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 땅으로 피신을 가는 한 가정의 이야기가 오늘 본문의 시작이고 룻기의 시작입니다. 물론, 이 가정에는 아직 룻이 없습니다. 엘리멜렉이라는 한 유대인 남자와 그의 아내 나오미 그리고 말론과 기룐이라는 두 아들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들의 나이를 알수는 없지만, 아무튼 아직 결혼하지 않은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주인공인 룻은 어디 있었을까요? 이 당시 룻은 모압 땅에 살고 있던 한 여자아이였을 것입니다. 물론, 나이는 알 수 없지만, 아직 결혼하지 않은 소녀로서 모압땅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당연히 모압 사람들의 종교와 문화 가운데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 모압은 그모스라는 신을 섬기는 민족이었습니다. 그렇게 룻이라는 한 소녀는 모압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흉년을 피해서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으로 피신을 떠난 엘리멜렉 가정은 그곳에 들어가 거처를 정하고 살았지만 오히려 그곳이 그들에게 더 큰 고난의 장소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선 가장인 엘리멜렉이 죽었습니다. 그가 어떤 병으로 죽었는지, 아니면 노환으로 죽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죽음은 그의 아내 나오미를 과부로 만들었죠. 두 아들을 데리고 여전히 모압에서 살았기에 그의 아들들은 모압 여인들을 아내로 맞이하게 됩니다. 한 아들의 아내는 오르바였고, 또 다른 아들의 아내가 바로 “룻”이었습니다. 모압에서 자라던 한 소녀 룻은 그렇게 유대인 가문과의 동거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들이 모압에서 거주하면 산지 10년쯤 되었을 때, 나오미의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이 죽습니다. 성경의 그들의 죽음에 원인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아무튼 결론적으로 한 부부와 두 아들이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 땅에 왔는데, 10년 만에 떠난 사람 중에는 나오미만 남았고, 더불어 두 아들과 결혼했던 두 며느리들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나오미 입장에서 말하면 흉년이라는 재앙을 피해서 모압으로 왔지만, 더 큰 재앙을 만나게 되었을 뿐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녀에게 아들들이 죽은 채 남겨진 두 며리들은 큰 부담의 무게만이 되었을 것입니다.
나오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보셔서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아마도 흉년이 물러가고 삶이 회복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겠죠? 그래서 두 며느리들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기 위한 길을 떠납니다. 그렇게 길을 떠나 가다가 나오미는 두 며느리들에게 말합니다.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 나오미의 말에는 우리가 알 수 있는 두 가지 사실이 들어있습니다. 첫째, 우선 며느리들이 자신들의 남편들이 살았을 때도 그들에게 잘 대했고, 그들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어머니를 잘 섬겼다는 것입니다. 나오미는 며느리들이 그렇게 죽은 아들들과 자신을 선대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대하셔서 새로운 남편을 얻어 편안하게 되기를 기도해 주고 있습니다. 두 번째, 후에도 나오지만, 이 며느리들, 특히 룻은 분명 이들과 함께 살면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게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하나님을 향한 기도의 언어로 며느리들을 보낼 수 있는 것이죠.
나오미는 결코 이들이 자신을 따라 올 것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것은 너무나 큰 부담이었을 것이구요. 그들에게 이스라엘은 이방나라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주 이방인들에게 배타적인 나라구요. 그런 민족이 사는 그 나라로 남편도 없는 그 며느리들을 데리고 갈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며느리들에게 입맞추며 눈물을 이별을 고하게 됩니다. 놀랍게도 며느리들은 울면서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그 어머님의 백성에게로 함께 가겠다고 간청합니다.
그러나 나오미 유대인의 원칙대로 그녀가 아들이 더 있으면 그 며느리들을 거둘 수 있지만 그녀가 나이 많아 아이를 낳을 수도 없고, 설령 낳을 소망이 있어도 그들이 자라 결혼하기까지는 너무난 긴 세월이기에 그들이 남편없이 그 긴세월을 보낼 수 없다며 그들을 설득하여 보냅니다. 이런 상황을 만나게 된 나오미의 아픈 마음이 13절의 하반절에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얼마나 나오미가 그 며느리들을 사랑했는지, 그리고 안타까워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평가할 때, 이 상황은 이 며느리들이 자신들의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상식적입니다. 당연히 그렇게 하도록 해야 하죠. 그것이 서로가 사는 방법입니다. 시어머니인 나오미도 그녀들을 잡으려 하지 않고 보내려고 하니까 이들에게 시어머니를 떠나 본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왜요? 이제 소망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당연한 길로 오르바는 떠나갔습니다. 그렇게 오르바는 룻기에서, 성경에서 사라진 여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룻은 떠나지 않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길로, 누가 뭐라고 할 수 없는 길로, 제발 그렇게 가라고 하는 길로 가지 않고 그녀는 그녀의 시어머니에게 달라붙었습니다. 우리는 다음 장에서 룻이 그렇게 하는 이유를 그의 신앙고백을 통해 알게 됩니다. 결국, 룻이 그녀의 시어머니에게 달라붙은 것은 신앙적인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이 선택은 결국 그녀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인물이 되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종종 삶의 어려움, 신앙적인 어려움으로 포기를 말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다른 길을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 한 번 더 붙들어야 합니다. 딱 달라붙어야 합니다. 그게 신앙입니다. 상황에 흔들리고 여건에 흔들려 소망이 없다고 여겨질 때 당연히 포기해도 아무렇지 않다고 여길 때 붙드시기 바랍니다. 그 때에 진정한 신앙을 드러내는 것이고, 그 때부터 하나님께서 일하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