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 9:1-15

아모스서를 마무리하는 9장입니다. 정의의 선지자라고 불리는 아모스 선지자는 1장 처음부터 온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쏟아놓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하며 회개를 촉구했으나, 그들이 회개하지 않자 하나님의 완전한 심판이 그들 앞에 있음을 선언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심판에 관련된 4개의 환상을 보여주었던 아모스 선지자는 본문에서 다섯 번째 환상을 보여줍니다. 이 다섯 번째 환상은 제단 곁에 나타나신 주님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가 아모스서 전체를 통해 볼수있는 것처럼 북왕국 이스라엘의 죄악의 중심에는 벧엘과 단 등에 세운 제단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불순종의 상징과 같은 것이었죠. 바로 그 제단 곁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기둥 머리를 쳐서 문지방이 움직이게 하며 그것으로 부서져서 무리의 머리에 떨어지게 하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부서진 문지방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죽게 될 것인데, 그들 가운데 살아 남은 자들은 칼로 죽이리라 하십니다. 한 사람도 도망하지도, 피하지도 못하리라 하십니다. 그들이 스올로 도망해도, 하늘로 올라가도, 산 꼭대기에 숨어도, 바다 밑에 숨어도 하나님은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그들을 찾아내 멸망시킬 것이라 하십니다.
5절에서도 계속 이어지는 심판의 선포 가운데에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으로서의 심판의 메시지가 더하여 지고 있습니다. 땅을 만져 녹게하시고, 강을 움직이시고, 하늘과 궁창을 움직이셔서 하나님의 심판의 일을 이루십니다.
이 모든 일 가운데 하나님께서 강조하시는 것은 하나님은 범죄한 나라를 주목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인 죄를 대하는 하나님의 태도이며,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우상숭배와 불의를 행한 이스라엘을 향해 불같은 심판을 선포하시며 무너뜨리실 것을 선언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죄를 미워하시고 그에 대해 보응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불같은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다시 보게 됩니다. 8절의 말씀에 보면 “보라 주 여호와의 눈이 범죄한 나라를 주목하노니 내가 그것을 지면에서 멸하리라. 그러나 야곱의 집은 온전히 멸하지는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은 백성 중에서 “화가 우리에게 미치지 아니하며 이르지 아니하리라”하는 모든 죄인은 칼에 죽으리라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께 범죄하고도 화를 받지 않을 것이라 여기는 교만한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 하나님은 야곱의 집을 온전히 멸하지는 아니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의 상황을 우리는 우리에게 잘 적용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범죄한 이스라엘에 쏟으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도 또한 죄로 인해 멸망받아 마땅했습니다. 그것이 현실이고 우리의 처지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기억하셨습니다. 11절부터 시작되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제 이스라엘을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사로잡은 것을 돌이키시고 황페한 성읍을 건축하여 다시 살게 하신다고 하십니다. 다시 과실을 풍성히 맺게 하시고 회복시키시겠다고 하십니다. 왜요? 그들이 돌이켰기 때문에요?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셔서 회복키로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우리가 사랑받을 만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십자가를 통해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우리가 받은 은혜를 값싸게 여기지 않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쏟아진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것이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감사, 우리의 기쁨, 우리의 헌신은 바로 이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