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 5:18-27

본문은 “화 있을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라고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성경에서, 특히 선지서에 자주 나오는 “화 있을진저”라는 표현은 마치 장례식에서 장송곡을 부르듯 곤경에 빠진 것에 대한 한탄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그런 표현의 말이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에게 향하고 있는 것은 사실 어색해 보입니다. 이것은 4장 12절에서 “네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는 표현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형벌하실 것을 대비하라는 의미였던 것처럼, 18절에서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것이 결국 그들에게 재앙이 되기 때문에 그 날을 사모하는 자들인 북왕국 이스라엘에게 화가 있다고 한탄하는 것입니다.
본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여호와의 날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시며 공의를 드러내시는 날입니다. 결국, 죄인들을 멸하시고 하나님의 정의를 나타내시는 날이죠. 북왕국 이스라엘의 사람들은 이미 앞서 아모스 선지자가 선포한 것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한 죄인들이기 때문에, 그 여호와의 날은 그들에게 빛이 아니라 어두움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이것은 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여 도망하다가 곰을 만난 상황, 혹은 집에 들어가서 손에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린 것 같은 상황과 같다고 말씀합니다. 전혀 대비하지 못한 재앙을 만나는 상황을 말씀하시는 것이죠. 하나님 보시기에 공의롭게 살지 못한 그들에게 하나님의 날은 빛 없는 어둠이고, 빛남 없는 캄캄함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스라엘은 그렇게 하나님의 날이 그들에게 재앙의 날이 된 것일까요? 그들의 문제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을 잊은 것일까요? 절기를 잘 지키지 않은 것일가요? 아니면 하나님께 온갖 악기를 동원한 찬양이 부족했던 것일까요?
21절부터 이어지는 아모스 선지자의 선언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의 절기를 미워하여 멸시하며, 그들의 성회를 기뻐하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그들이 번제나 소제를 하나님께 드릴지라도 받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아무리 살진 희생제물을 드리고, 감사의 제물인 화목제를 드려도 돌아보지도 않겠다고 하십니다. 노랫소리를 그치라 하시고 비파 소리도 듣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이 그들의 가진 열심과 방법으로 하나님을 향해 해야 할 의식적인 의무를 다하고 거기에 더 할지라도 하나님은 이미 그들의 그 예배를 받지 않으신다고 말씀합니다. 왜일까요? 우리는 24절에서 그 이유를 알게 됩니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 지어다!” 사실 오늘 이 24절의 말씀은 아모스의 주제구절이라 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정의롭고 공의로운 삶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행하지 않으면서 외식적인 예배만 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말씀에서 이스라엘 족속이 드린 40년간의 희생과 소제물을 언급하지만 그들이 그러한 예배를 행하면서도 우상을 숭배했던 악한 모습을 지적하십니다. 우리는 이미 앞선 구절들 속에서 이스라엘의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부유함과 권력을 누리면서 가난한 자들의 물질을 약탈하고 힘없는 자들을 학대했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예배를 소홀히 하도록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예배가 하나님을 향한 철저한 순종과 경외함의 표현이 아니기에 그들에 삶에 하나님이 명하신 공의와 정의가 없음을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진정한 예배자들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진정한 예배자는 주님께 경외함으로 예배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드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에 하나님이 명하신 공의와 정의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